오선화는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면(현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오승일(吳勝一)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유년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이후 대구에서 체류하다 입대, 대한민국 육군에서 여군 부사관으로 4년간 복무했다.
1978년 대구보건전문대학에 입학하여 1980년 2월에 졸업하였다.
1983년 도일하여 도쿄 우에노의 한인 클럽에서 본명 오승일 대신, 가명인 오선화를 쓰며 호스티스로 일을 하다가 치맛 바람을 출판하게 되었으며, 다이토 분카 대학 영어과에 편입학하여 졸업하였다.
1991년경부터 일본의 언론에 칼럼과 논설을 기고하였으며, 대학 비상근 강사 및 교수로 활동하였다.
1994년 일본에서 칼럼, 집필, 기고 활동과 방송 출연 등을 시작하였으며, 일본에서 그는 다이토 분카대학 영문학과에 편입학한 뒤 졸업하였다.
이후 도쿄 외국어대학 대학원에 진학, 영문학 석사 과정을 수료후 칼럼, 기고, 방송 언론 활동을 하였으며, 대한민국의 국수주의, 광적인 쇼비니즘, 한국 남성들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행동, 일제 강점기에 대한 한국인들의 피해 의식에 대한 망언으로 대한민국을 분노케했다.
2007년 9월 제주도에 살던 어머니가 사망하자, 10월 1일 오전 자신의 어머니 장례식 참석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했으나,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입국을 거부당했다.
10월 1일 낮 12시 20분 도착 도쿄∼제주 항공편으로
제주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려 했으나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입국금지조치 대상자로 지정됐다는 이유로 일시적으로 입국을 거부당했다.
그녀는 입국을 허용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대한민국 정부는 거절했고, 이를 일본측에서 인권침해라고 주장하였다.
오선화는 제주총영사관에 의뢰해 대한민국과 교섭해 겨우 ‘인도적 배려’차원에서 귀국을 인정받아 장례식에 참석 후 10월 4일 오후 일본으로 돌아갔다.
오선화이름으로 발간한 책자
치맛바람(スカートの風)
반일 한국에 미래는 없다
한국인이 보았던 북한 (2003년)
한국 병합에의 길 (2000년)
생활자의 일본 통치 시대 (2000년)
양이의 한국·개국의 일본 (1996)
오선화 학력 및 국적 변경 연도에 대한 의문점
오선화는 제주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생애 초기에 대한 자료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대한민국의 방송사 MBC가 2006년 8월 15일에 방영한 《PD 수첩》에 따르면 오선화는 그녀의 주장과는 달리 대구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으며 1991년 6월 11일에 일본 국적을 취득, 1998년 10월 29일에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했다.
방영된 내용에 따르면, 대구대학교의 입학생 명단과 졸업생 명단, 편입생 명단 어디에서도 오선화나 그녀의 본명으로 알려진 오승일(吳勝一)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경향신문의 취재 결과에 따르면, 오선화는 대구대학교가 아닌 1978년 대구보건전문대학 임상병리과에 입학하여
1980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당시에는 본명인 오승일을 사용하였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간 후, 일본 도쿄에 있는 다이토분카 대학(大東文化大學)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내에서 언론 투고, 칼럼 활동을 하였다.
오선화는 일본에 처음 갔을 때 접대부(호스티스)로 일을 하였는데, 이는 그녀와 동거했던 일본인 사업가 및 재일 교포가 PD 수첩에 출연해 증언하였다.
오선화는 강연과 칼럼에서 한국 남자들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과 권위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2006년 7월에는 일본의 시사잡지 월간 분게이슌주(文藝春秋) 7월호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한국 남성 비판론을 기고했다.
한 강연에서 그는 '한국 남성은 연애할 때는 온갖 미사여구를
다 써가며 여자를 유혹하지만, 결혼 후에는 바람기와 폭력, 남아선호사상, 고부 간 갈등 등을 통해 여성을 견딜 수 없이 괴롭힌다고 주장을 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국 여성들에 대한 비판도 하였다. 저서 《치맛바람(スカートの風)》등을 통해 한국 여성의 치맛바람 등을 비판 하였고, '한국에서는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에 구멍이 난다 하여
한국 여성의 성향을 일부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의 반일 감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창씨개명 논란에 관해 그는 '창씨개명은 하고 싶은 사람만 한 것이지 강제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망언하였다.
2007년 일본에서의 한 강연에서는 한국의 반일 감정을 비판 "한반도 태풍은 일본이 다 막아준다.
한반도에서 보면 고마운 일이다고 주장하였고, 독도 영유권 논쟁 당시에는 "욘사마나 쫓아다니는 기품없는 사람들이니 독도 문제나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 제대로 발언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일본을 비판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일부 터무니 없는 주장도 제기되어 비판을 야기했다. '한국 남대문 주위에는 쓰레기만 있으며 북한은 위험하니 일본의 선제 공격도 생각 해봐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2013년 현재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오씨는 지난 5월 2일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일대 대지 974m2 중 743m2를 매입했다.
매입 금액은 1억 9300만원으로 오씨의 국적과 현재 주소는 일본으로 표기돼 있다.
오씨가 매입한 땅은 성산일출봉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일반 상업지역으로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로
토지의 용도는 일반상업지역이고, 토지 가장자리로 너비 15~20m 규모의 왕복 2차선 도로가 계획돼 있다.